BRIGHT SIDE

Fashion + Culture + Style

  • 2025. 3. 12.

    by. brightsider

    목차

      1950년대 말에 세대차를 깨고 나타나 성행했던 스트리트 스타일(Street Style)은 젊은이, 소외된 자, 아웃사이더, 거리를 활보하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패션이었습니다. 스트리트 스타일은 젊은이들에게 자기 표현을 가능하고, 젊은이들이 자신의 열정을 나타내고 같은 생각을 가진 그들만의 집단을 확인할 수 있는 강력한 언어이기도 합니다. 

       

       

      스트리트 스타일이란?

       

      스타일과 패션에 대한 '스트리트'로의 접근 방식은 트렌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었습니다. 각 개인들은 하위 문화 및 이와 교차하는 스타일이나 트렌드를 활용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자신만의 정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그 자체로 퍼포먼스였으며, 옷차림을 통해 정체성을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빌 커닝햄은 스트리트 스타일을 일반인들의 패션 카탈로그로 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스트리트가 패션과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언급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최고의 패션쇼는 매일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트리트 스타일은 빠르게 퍼졌고, 패션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타일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감안할 때, 스트리트 패션은 이후 패스트 패션과 연결되며 자연스럽게 소비주의와 관련되었습니다.

       

       

      발전과 특징

       

      스트리트 스타일은 항상 존재했지만 20세기에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 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교외화, 대량 마케팅, 텔레비전의 확산 등으로 대표되는 생활 양식의 표준화는 "정체성"을 추구하는 개인에게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의 매력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특히 대량 생산은 하이 패션에서 기성복을 거쳐 시스템의 주변부로 이동하는 현상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트렌드는 영국에서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으며, 전후 시기에 젊은이들의 주요 스타일들을 밝혀냈습니다. 


      정체성의 역사와 의복의 역사는 두 개의 평행선으로 진행됩니다. 스트리트 스타일은 그룹 정체성과 하위 문화적 응집력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의 서구 문화는 인종, 종교, 지역주의, 민족주의와 같은 전통적인 사회문화적 구분이 개인의 정체성을 정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의 바이커 · 비트 · 테디 보이와 같은 그룹, 1960년대의 모드 · 히피 · 스킨헤드, 1970년대의 헤드뱅어 · 펑크 · 비보이, 1980년대의 고스족 · 뉴에이지 여행자 · 레이버들은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옷차림과 특이한 신체 장식을 했습니다.

      20세기 전반에는 스트리트를 걷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패션 사진에 점점 더 많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종종 부르주아적 존재의 추구에 얽매여 있었고, 하이엔드 패션을 위한 소품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이는 플라뇌르와 당시의 남성 특권적 시각과 대조되었습니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스타일 잡지가 등장한 전후 시기에 플라뇌르의 이미지는 "도시의 남자"라는 개념과 융합되어 패션 사진으로 시각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남성성은 대도시의 산업적 분위기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테런스 도노반이 1962년 10월호 Town의 "Spy Drama"에 실린 날카로운 정장을 입은 남성의 흐릿한 흑백 사진에서 잘 나타나며, 영화 007 제임스 본드에 시각적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스트리트 문화가 주요 맥락이라고 주장하는 청년들이 등장하면서 여성에 대한 표현은 급진화되었습니다.

       

      1) 스포츠웨어의 영향

      스트리트 스타일은 스포츠웨어를 입는 일반인을 포함하며, 다양한 스포츠웨어 브랜드 속 모델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스케이트 보딩이 특히 특정 스트리트 스타일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트리트 스타일 추종자의 이미지는 종종 스케이트 보딩과 일치합니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 보드에서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스케이트화를 선택했습니다.

       

      스트리트 패션

       

       

      2) DIY (DO IT YOURSELF)

      DIY 방식은 스트리트 스타일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주류 의상이나 중고 옷들을 고치고 장식하며 설정을 바꾸는 스타일입니다. 엄숙함에 반대하고, 딸부터 어머니까지, 아들부터 아버지까지, 아마추어부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뛰어넘는 트렌드였습니다. 1962년부터 68년 사이는 특히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이 때의 스트리트 스타일의 매력과 독창성이 하이패션의 주도권에 도전하여 결국 그 주도권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3) 대중음악과 정치

      어떤 스트리트 스타일이든, 그 중심에는 대중문화, 즉 대중예술과 대중음악 및 정치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풍조들, 비트족 · 모즈 · 록커 · 히피와 관련된 다양한 패션이 생겨났습니다. 일단 하나의 패션이 진행되며, 완강히 저항하는 자들이 생겨났지만 그 진행은 뚜렷해졌습니다. 1960년대에는 모즈 혹은 모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구시대적이며 실제로 계급의식을 갖고 있으며, 외국인을 혐오하는 '테디 보이'의 태도와는 반대로, 모즈는 단색과 흑백, 무늬가 없고 샤프하고 타이트하며 도시적이고 이국적이며 기계화된 룩을 지향했습니다. 모즈는 록큰롤이나 값비싼 유럽풍 캐주얼웨어, 몸에 꼭 맞는 정장보다는 대중음악과 모던 재즈를 더 선호했습니다. 이들은 꾸미지 않고 간결하고 매끈했습니다. 

       

      1967년까지 히피는 그 시대의 가장 분명하고 극단적인 아웃사이더였습니다. 그들은 구세대의 생활방식 뿐만 아니라, 정치 및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구조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대서양 양옆의 베이비 붐 세대들과 연계하여 국제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스트리트 스타일에는 이런 저항이 있었습니다. 히피복장은 계속 바뀌는 혼란스러운 신념, 즉 세계주의 · 다문화주의 · 평화 · 자유에 대한 지지를 드러냈습니다. 값싸고 취향에 맞게 수선한 중고의류들을 반문화적인 축제의 장에서 입었습니다. 샤프하고 도시적인 것을 몰아내고 무기력해지고 중추가 사라졌습니다. 이런 이상주의는 1967년 섬머 오브 러브에서 정점에 이룬 후 환멸감으로 1960년대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역동주의에서 자기성찰로 변화하게 된 것입니다. 

       

       

      스트리트 패션의 주요 도시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트렌드세터, 블로거, 패션 리테일러 및 모델은 도시의 표현에 영향을 미칩니다. 소비자 관점에서 도시 관광은 도시 브랜딩과 연결되어 있으며, 도시의 표현은 방문객과 소비자를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1) 밀라노

      밀라노에는 패션위크를 포함한 여러 패션 이벤트들이 있습니다. 밀라노는 스타일, 도시 생활, 패션 컬렉션 및 디자이너 면에서 '패션의 수도(capitale della moda)'로 지창되며, 다른 도시들과 이 지위를 놓고 경쟁하도록 끊임없이 동기가 부여되고 있습니다.

       

      2) 파리

      파리는 특정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서 확실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과 패션의 도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낭만의 도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파리를 패션, 사랑, 꿈의 중심지로서 파리를 강하고 명확하게 연상되게 하고 있습니다. 

       

      3) 도쿄

      일본의 스트리트 패션은 매우 다양한 트렌드를 동시에 유지하고 있어, 유명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영향력이 있는 여고생들이 또한 패션 트렌드를 이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스트리트 패션은 다양한 패션업체들과 하위 문화 간의 소셜 네트워크에서 출현하며, 독창적인 모습으로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독특한데 정치적이지 않으며, 혁신적인 패션으로 소속감을 가지게 합니다.

       

      4) 런던

      런던은 스트리트 스타일의 중고 시장과 언더그라운드 경향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데 선구자였습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도시인 런던은 스트리트 스타일이 일반적인 대중적 패션을 구현할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런던이 유럽 스트리트 스타일의 중심지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영국 패션 플레이어가 패션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가지고 젊고 유망한 인재들과 협력에 개방적이고 유연했기 때문입니다.

       

      5) 뉴욕

      런웨이 메이크업을 한 모델이 야외 창고 공간과 차고 앞이나 거리에서 사진 촬영하는 관행은 뉴욕에서 유래했습니다. 1890년대의 깁슨 걸, 1920년대의 플래퍼 패션, 1930년대와 40년대의 거친 남성적인 작업복에서 시작하여, 재즈, 록, 디스코, 힙합과 같은 대중음악과 농구, 야구, 오토바이, 서핑, 스케이트보딩 등의 스포츠, 히피, 펑크, 그런지 등의 반문화 운동,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이 모두 뉴욕의 패션과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트리트 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