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GHT SIDE

Fashion + Culture + Style

  • 2025. 3. 14.

    by. brightsider

    목차

       

      저항문화: 다른 사회에 대한 열망

       

      "그들은 다시 그럴 수 없을 것처럼 모즈 의상, 빅토리아풍 슈트, 노인 가운, 구식 서부 의상, 해적 복장, 자유 의상을 입고 나타났다" (찰스 페리, 1984)

       

      가난한 사람들은 한껏 차려입었고 부자들만이 수수하게 입는 여유를 부렸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중고 옷은 가난과 절약의 낙인을 짊어지는 것이라 피하고 싶은 빈곤의 단면이었습니다. 20세기에 중고 옷은 풍족한 전후 시대에 들어서서야 패셔너블한 아이템이 되었고, 풍요롭게 자란 십대들과 보헤미안들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중고 옷을 입었습니다. 1950년대 비트 걸(Beat Girl, 1950년대 기성 도덕을 거부하고 광란적인 재즈 음악을 선호했던 미국의 젊은 소녀들)들은 미국 중산층의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뉴욕의 떨이 판매를 샅샅이 뒤져 1930~1940년대에 만들어진 새틴 드레스와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다녔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까지 중고 의류는 저항문화를 연상시켰고, 다른 사회에 대한 열망을 나타냈습니다. 중고 의류는 물질주의에 대한 거부와 더불어 소비자 자본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유토피아적 이상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에 대한 이러한 저항은 마치 가난을 하나의 스타일로 표현하며 현실의 가난과 의류무역에 퍼져있는 착취를 조롱하는 것 같았습니다. 1974년 미국의 작가 톰 울프는 이러한 양상을 급진적 쉬크(Radical Chic)이라 부르며, 풍족하게 자란 젊은이들이 '허름한 옷을 입고 혁명을 외치는 모습을 조롱했습니다.

       

      래디컬 시크를 언급한 톰 울프의 책 표지
      래디컬 시크를 언급한 톰 울프의 책 표지

       

      빈티지: 대안적 스타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피 및 저항문화와 관련된 옷들은 복고 스타일 또는 추후 '빈티지'로 알려진 옷을 의미했으며, 비싼 디자이너 옷을 원하지 않거나 살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대안을 제공했습니다. 남성복의 경우에는 테일러드 슈트의 엄격한 획일화에 반하는 쾌락주의가 나타났습니다. 1967년 영국 팝 아티스트 피터 블레이크가 비틀스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한 것은 절충적인 히피 스타일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유행했던 군대에서 빼돌려진 옷 같은 비틀스의 붉은색 군복에는 군국주의에 대한 조롱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복고풍 의상들은 그런 옷을 입는 사람들을 사회의 주류층과 구분지었고, 패션 시스템 내에서 대등하게 참여할 방법이 제한된 젊은이들은 컬러풀하고 얼룩덜룩한 색상의 옷을 입었습니다. 19세기 댄디즘과 비슷하게, 돈보다는 독창성과 재능에 더 의존했습니다. 잡동사니 판매나 떨이 판매에서 옷을 구해 입는 복고주의 현상은 1960년대 말에 유럽으로 건너왔습니다. 런던에 '횡재와 여행을 떠나는 할머니(Serendipity and Granny Takes A Trip)' 같은 작은 중고품 가게들이 생겨났습니다.

      빈티지
      빈티지 : 대안적 스타일

       

      패션에서 벗어난 패션

       

      1980년대 첨단 기술이 주던 현대성과는 반대로 옷차림은 옛날을 그리워하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추구했습니다. 빈티지 옷의 천연 섬유는 시장에 널리 퍼진 합성섬유보다 가치를 높이 인정받았습니다. 여성들은 1930년대 1940년대에 입던 날염된 크레이프 드레스 위에 구식 모피 코트를 입었습니다. 엔티크 레이스 패티코트, 빅토리아풍 숄, 군복 코트, 1940년대의 모직 테일러드 재킷은 시대를 불문하고 뒤섞여 대형 브랜드가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룩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브 생 로랑의 호사스러운 에스닉 룩과 같이 디자이너들 역시 이런 저항문화 스타일을 모방하려고 노력했지만, 완벽하게 구현해내지는 못했습니다. 저항문화 안에서의 패션은 스스로 패션과 유행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