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GHT SIDE

Fashion + Culture + Style

  • 2025. 3. 11.

    by. brightsider

    목차

      1960년대 스윙잉 런던 패션
      1960년대

       

      스윙잉 런던 이란?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은 1960년대 런던에서 번성했던 패션과 문화 용어로, 젊고 새롭고 현대적인 것을 강조하는 현상이었습니다. 이 문화 혁명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1950년대의 힘든 시기를 거친 후, 영국 경제가 회복되었던 것이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힙하거나 유행이라는 의미의 "스윙잉"은 1960년대 초반부터 사용된 단어로, 보그(Vogue)의 편집자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런던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스윙하는 도시입니다"라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스윙잉 런던의 상징

      (1) 모델

      스윙잉 런던 시대에 패션과 사진은 퀸 매거진(Queen Magazine)에 실렸고, 이는 패션 디자이너  메리 퀸트(Mary Quant)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모델 진 쉬림턴(Jean Shrimpton)은 당대 아이콘이자 세계 최초의 슈퍼모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는 "60년대의 얼굴"이라고 불렸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스윙잉 런던의 상징"이자 "1960년대의 화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시대의 또 다른 인기 모델로는 베르슈카(Veruschka)와 트위기(Twiggy) 등이 있었습니다. 트위기는 "모드의 여왕"이라고 불렸고, 1964년부터 1966년까지 텔레비전 록 쇼인 '레디 스테디 고(Ready Steady Go!)'를 진행했던 캐시 맥고완(Cathy McGowan)도 비슷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2) 청년문화

      미니스커트로 대표되는 모드 패션은 런던의 카나비 스트리트와 첼시의 킹스 로드 등의 패션 지역을 휩쓸었습니다. 이 패션은 청소년 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3) 유니온 잭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은 1966년 월드컵에서의 영국 우승 같은 이벤트의 도움을 받아 또한 또 하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의 부티크 패션

       

      스윙잉 런던은 1960년대의 포괄적인 문화 청년 운동으로, 파리와 런던의 쿠튀르 하우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패션 산업의 풍경을 바꾸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1960년대에 성인이 되었고, 그들은 보수적인 전후 사회의 규범에 반항했습니다. 여성들은 더욱 독립적이 되었고 1950년대의 보수적인 여성성을 거부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더 많은 사람들이 패션을 포함한 예술 분야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대학 수업료를 보조했습니다. 젊은이들은 대량 생산되는 저렴한 기성복의 폭발적인 증가에 힘입어 스타일을 재창조하고 실험하기 위해 런던의 부티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런던의 부티크들은 이후 Topshop과 Miss Selfridge와 같은 하이 스트리트 패션 매장의 전신이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는 메리 퀀트(Mary Quant)로, 그녀는 1955년에 자신의 부티크 '바자(Bazaar)'를 오픈하여 많은 다른 디자이너들이 뒤따를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제 주문 제작 쿠튀르 의류를 만들 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옷은 미술관처럼 전시되었고 록큰롤 음악이 사운드트랙으로 깔렸습니다. 사이키델릭, 신비주의, 벨벳, 아르누보, 인도 패턴, 미니 스커트, 점프수트, 유니섹스, A라인 실루엣 등이 트렌드에 포함되었습니다. 이는 많은 디자이너가 기성복 산업에 뛰어들어 자체 부티크를 열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일부는 오트 쿠튀르 매장을 완전히 닫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명인이 지지하는 패션 라인이 시작되었고, 자체 부티크도 여는 셀럽들이 생겨났습니다.

       

      (1) 캐시 맥고완(Cathy McGowan)

      인기 음악 쇼 '레디 스테디 고!'의 진행자로 '모드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영국 전역의 소녀들에게 패션의 우상이었습니다. 그녀는 1965년에 자신의 '부티크' 우편 주문 의류 라인과 메이크업 키트를 출시했습니다.

       

      (2) 트위기(Twiggy)

      60년대의 상징적인 모델로, 1966년 타라미나 텍스타일(Taramina Textiles)과 협력하여 트위기 패션(Twiggy Fashion)을 설립했습니다. 이 의류는 파멜라 프록터(Pamela Proctor)와 폴 밥(Paul Babb)이 디자인했으며, 메리 퀀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이듬해에는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출시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브랜드 출시 전, ABC 방송은 트위기가 미국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3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구매자에게는 그녀의 얼굴이 그려진  옷걸이가 함께 제공되었습니다.

       

      (3) 루루(Lulu)

      스코틀랜드의 가수로 1969년 프리먼의 카탈로그와 협력하여 렌브리 패션(Lenbry Fashions)에서 만든 의류 라인을 홍보했습니다.

       

       

       

      대표 부티크들

      (1) 비바 (BIBA)

      비바는 디자이너 바바라 훌라니츠키가 설립한 소매 상점이었습니다. 그녀는 1954년부터 1956년까지 브라이튼 예술 학교에서 공부했고, 1955년 이브닝 스탠다드 비치웨어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그녀의 패션 경력은 Vogue, Tatler, Harper's, WWD와 같은 잡지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부업으로 의류를 디자인했고, 런던의 데일리 미러 패션 칼럼에 소개된 작은 우편 주문 사업을 통해 첫 번째 디자인을 판매했습니다. 여기서의 성공으로 1964년 인기 쇼핑 지역이었던 런던 켄싱턴에 첫 번째 Biba 매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가격이 £1.5-£2였던 저렴한 드레스들을 이제 막 돈을 벌기 시작한 십대들에게 판매하며 젊은 패션에 대한 틈새 시장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매장은 큰 인기를 얻었고, 믹 재거(Mick Jagger), 보위(Bowie),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 같은 아티스트의 모임 장소가 되었습니다. 캐시 맥고완이 프라이데이 나잇쇼에서 Biba의 옷을 입은 다음 날엔 모든 십대 소녀들이 그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Biba 매장은 아르 데코와 아르 누보 스타일이 만나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1969년에는 화장품이 출시되었고, 신발 라인도 출시되었습니다. 브랜드가 성장함에 따라 뉴욕의 버그도르프 굿맨 백화점(Bergdorf Goodman’s)솨 협력하여 1970년에 Biba Boutique를 오픈했습니다. 1973년에는 Big Biba 백화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켄싱턴 하이 스트리트에 있는 7층 건물이었습니다. 이 매장은 각 층마다 고유한 테마가 있도록 화려하게 디자인되었습니다. 주당 최대 1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큰 명소가 되었습니다. 1층에는 어린이 카페가 있는 동화 마을이 있었고, 뮤직 코너에는 거대한 레코드 플레이어가 있었습니다. 무지개색 조명이 특징인 레인보우 룸 레스토랑(Rainbow Room Restaurant)도 있었습니다. 롤링 스톤즈와 트위기와 같은 유명인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였으며 콘서트 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보위가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이국적인 식물, 플라밍고, 펭귄 사이에서 차나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옥상 정원까지 있었습니다.

      Big Biba는 1975년에 문을 닫았는데, 영국의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그런 사치스러운 매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홀라니츠키는 1976년에 브라질로 이주하여 현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2) 메리 퀀트(Mary Quant)

      메리 퀀트는 스윙잉 식스티 전성기에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녀는 당시 젊은이들을 위해 디자인된 패션을 만들며 자유와 에너지를 구현했습니다. 1953년 골드스미스를 졸업하고 메이페어 모자 제작소에서 실습하는 것으로 패션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그녀는 이미 트위드, 깅엄, 리버티 프린트로 자신만의 유니섹스 의류를 만들었고, 1955년에 바자(Bazaar)라는 부티크를 열었습니다. 옷가게, 레스토랑, 클럽이 섞인 매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티스트 친구들이 디자인한 액세서리를 판매했고,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옷을 디자인했으며, 새롭고 신선한 옷 만드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바자의 윈도우 디스플레이는 기발한 소품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늦은 저녁까지 영업하면서 커다란 음악과 무료 음료가 제공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개성있는 군중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1961년 피임약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들은 보수적인 정치와 사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퀀트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며, "옷은 집 밖의 삶에서 경쟁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젊은 지식인은 패션이 경박하지 않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패션은 오늘날 살아가는 것의 일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정치적 견해는 디자인에 스며들어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고, 권위자들에게는 충격을 주고, 이전 세대의 현상 유지를 거부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20세기 여성 해방과 패션의 민주화의 일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962년에 JC페니와 협력했고, 1963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Ginger Group이라는 저렴한 도매 라인을 출시했습니다. 1966년에는 화장품, 다채로운 타이츠와 양말, 속옷, 레인웨어, 신발, 수영복 라인을 생산했습니다. 그녀는 젊음의 자유와 에너지에 맞춰 제국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1965년 미니스커트를 선보였을 때, 이전에 어떤 디자인보다 더 짧았습니다. "짧아서 움직이고, 달리고, 버스를 타고, 춤출 수 있었습니다"라고 홍보했고 성공했습니다. 또한 8살짜리 아이의 스웨터를 입어보고 영감을 받아 스키니 리브 스웨터를 만들었고, 1966년에는 핫팬츠를 발명했습니다. 또한 PVC를 사용하여 "젖은 듯한" 의류를 처음 만든 사람이며, 방수 부츠를 디자인했습니다.

      1970년에는 ICI Fibres와 함께 가정용 가구와 가정용 직물 라인을 출시했습니다. 런던 박물관에서 'Mary Quant’s London'이라는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1990년에 그녀는 British Fashion Council로부터 명예의 전당 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 데임 작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023년 4월에 사망했습니다.

       

       

       

      현대에의 영향

       

      이처럼 스윙잉 런던은 패션의 아이디어가 상류 사회가 아닌 거리와 젊은이에게서 나왔고, 마케팅을 위해 대중 문화 아이콘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패션 스타일이었습니다. 이 스타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믹 재거,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 패티 보이드, 마리안 페이스풀 등의 록 스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티크들은 1970년대에 영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성기를 마감했습니다. 유행이 지속되는 동안 런던에서 가장 흥미로운 패션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현대 패스트 패션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