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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라벨의 시작
1890년대 조르주 뷔통(Vuitton)이 그의 슈트케이스를 브랜드화하기 위해 자신의 수하물회사 이니셜을 기하학적 꽃무늬와 함께 디자인할 때만 해도 자신이 어떤 유행을 탄생시킬지 짐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뷔통의 이런 대담한 행동은 산업시대의 부르주아들이 타국 해안에 도착할 때 그들의 부를 뽐내게 해서 자신감을 북돋워주고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행동이 아니라 돈이 계급의 중요한 지시기호(signifier)가 되었습니다.
몇 년 후, 1920~1930년대의 신사복 디자이너 장 파투도 그의 모노그램을 수놓은 해변용 스웨터를 프랑스의 비아리츠와 도빌에서 판매하였습니다. 두 개의 C를 맞물린 코코 샤넬의 로고도 즉각 눈에 띄었습니다. 유사하게 구찌 구두의 재갈무늬(snaffle bar) 로고는 자존심 강한 1970년대 남성들에게 자신의 발도 괜찮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상품의 차별화로서의 브랜드
상품을 차별화하려는 초기의 이러한 시도들은 패션이 라벨과 이니셜 로고로 뒤덮이는 20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에 일어날 일의 서론에 불과했습니다. 벨트 버클에 쓰인 에르메스(Hermes)의 H, 바지와 셔츠에 수놓은 구찌(Gucci)의 G, 열쇠뭉치처럼 가방에 매달려 딸랑거리는 디올(Dior)의 알파벳 D 등이 예들입니다. 잔니 베르사체(Versace)는 지혜의 여신이 들고 다니는 메두사 방패를 단추로 만들었습니다. 랄프 로렌(Ralph Lauren)은 최고 부유층의 놀이였던 폴로 선수를 셔츠 앞면에 수놓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각계각층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나이키 신발이 "우리 모두 승자"라고 말해주는 글로벌 사회에서는 멤버쉽을 위해 더 이상 돈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에서 패션 산업의 역할이 변화한 데서 기인했습니다. 사회가 좀 더 민주화됨에 따라 패션계는 상류층의 구매를 부추겼던 문장 체계의 광고를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광고는 마침내 세계적인 언어가 되었고 어휘는 더 간단해졌습니다. 예를 들면 어깨선의 재단 형태 보다는 구두나 가방이 눈에 더 잘 들어오고 모방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요즈음 전 세계의 소비자들은 잡지를 흝어보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대변해 줄 브랜드 네임을 보고 제품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 라벨의 변화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최근에는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하우스들이 그들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상투적인 방식에 싫증을 내고 있습니다. 루이 뷔통의 독자적인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는 1999년 브랜드의 고유 모노그램을 키치적인 빨강과 라일락 색의 에나멜 가죽에 디자인하여 이이러니한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샤넬(Chanel)의 '2005' 핸드백은 샤넬의 과거 느낌을 없애면서 그 전의 보수적인 디자인을 빠르게 전진하는 미래주의로 대체했습니다. 팔에 낀 모습이 길다란 프랑스 빵(바게뜨)처럼 보인다하여 이름 붙은, 1977년에 출시된 펜디의 '바게트 백(bagette bag)'의 끝없는 변화는 유쾌한 개성과 신분 획득의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오늘 날 샤넬 하우스가 파는 것은 패션의 최대 상징인 샤넬 로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파는 것은 패션보다는 샤넬의 역시이다" - 바바라 빈켄,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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