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GHT SIDE

Fashion + Culture + Style

  • 2025. 3. 6.

    by. brightsider

    목차

      Jane Morris의 드레스
      Jane Morris

       

      20세기 초중반의 의상개혁운동(Dress Reform Movement)은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변화와 맞물려 발전한 중요한 역사적 현상입니다. 이 운동은 몸에 꼭 맞게 단단하게 조여서 작용하던 19세기 중후반의 화려한 드레스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편안하고 실용적인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하려는 다양한 시도와 노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운동의 기초는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여성의 권리 신장 운동과 연결됩니다.



      역사적 배경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산업혁명, 사회적 변화, 여성의 권리 운동 등 다양한 측면에서 큰 변혁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여성들은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노동 시장에도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가정 내에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 위치를 찾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의상개혁운동이 대두되었습니다. 당시 여성복은 굉장히 비좁고 불편한 형태로, 특히 코르셋은 여성의 건강과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소로 지목되었습니다.

       

      의상개혁에 대한 논쟁은 1880년대에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1881년 성립된 합리주의 복식 협회(Rational Dress Society)는 몸을 구속하는 의복에 대해 사회적 · 의학적인 관심을 끌어냈습니다. 1884년 런던에서 주최한 국제건강박람회(International Health Exhibition)에서는 건강에 부합하는 의상 전시도 열렸습니다. 이 전시에 참가한 동물학 및 생리학 교수인 구스타프 예거 박사는 인체에 직접 닿는 소재로는 양모와 같은 천연섬유만 사용해야 한다는 건강복(Healthful Dress) 이론을 개진했습니다. 이상적인 개혁 및 유미주의 의상(Reform and Aesthetic Dress)이 1884년에 설립된 런던 리버티사의 의류부서를 통해 상업적으로 보급되었습니다. 리버티에서 생산한 헐렁하게 흘러내리는 디자인의 드레스들은 코르셋 없이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초기 개혁 및 유미주의 의상의 전형적인 특징은 넉넉한 재단과 차분한 색체, 스모킹(당시 농부들의 옷에 사용됨), 자수 등이었습니다.


      주요 목표와 원인

      의상개혁운동의 주된 목표는 여성의 신체적 자유와 경제적 자립을 증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코르셋은 여성의 신체를 심각하게 압박해 건강 문제를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도 장애가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의복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자 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단지 외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지고자 했습니다.

       

      20세기에도 개혁 및 유미주의 의상 스타일은 파리 쿠튀르들이  지배하는 디자인과 진부한 시즌 모델에서 패션을 해방시키려는 방안을 계속 모색해왔습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통합을 주장했던 벨기에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헨리 만 데 벨데는 리버티의 카탈로그와 영국 작가 케이트 그린웨이가 그린 동화 삽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아내 마리아를 위해 처음으로 의상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는 벨벳과 같이 무거운 평직 소재에 레이스를 달고 전형적인 아르누보 곡선으로 된 아플리케로 장식했습니다.

       

       

      주요 인물과 지지자

      이 운동에는 여러 유명한 인물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를 통해 패션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대안을 제시하였고, 여성복 디자인의 혁신에 기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패션 디자이너인 루이스 코스비(Louis Comfort Tiffany)는 코르셋을 대체할 더 편안한 드레스를 디자인했습니다. 또한, 여성운동가이자 작가인 에밀리 매시(Emily Match)와 같은 인물들은 이러한 의상 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강연회와 집회 등을 개최했습니다.

       

      빈 분리파 운동으로는 1903년에 호가 클로만 모저와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이 빈 공방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방가르드 디자인 그룹은 텍스타일 작업실과 패션 분과를 개설하여 의상 디자인과 실내 디자인을 조화시킬 뿐 아니라, 디자인을 아르누보에서 탈피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은 특히 찰스 레니 매킨토시 같은 스코틀랜드의 네덜란드의 아르누보 디자이너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들은 아시아의 그래픽과 텍스타일 디자인, 민속예술, 그리고 현대 추상미술을 이용해서 디자인하기도 하였습니다. 드레스는 수직적이고 허리선이 높은 집정기 양식을 따랐는데 , 이후 이러한 디자인들을 폴 푸아레가 대중화시켰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마리아노 포르투니와 마리아 모나치 갈렌가 등 유미주의 의상 개념을 추구한 예술가들이 디자이너가 되어 민족적인 영감이 섞인 고전적 모델과 중세적 모델을 따랐습니다.   

       

       

      디자인의 변화

      의상개혁운동의 일환으로, 많은 디자이너와 재봉사들이 활동하면서 새로운 디자인이 등장했습니다. 여기에는 하이 르네상스 스타일, 보헤미안 스타일, 그리고 아방가르드(avant-garde) 스타일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디자인은 여성의 신체를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긴 드레스 대신 더 간편하고 엉덩이를 감추는 형태의 의복, 자유로운 소매와 넉넉한 실루엣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실용성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950년대 뉴욕의 아멜리아 젠크스 블루머는 기능적인 옷을 옹호하면서 코르셋 패션과 긴 스커트에 대한 대안으로 무릎 길이의 터키풍 바지를 입었는데(이러한 형태가 이후 블루머로 알려졌습니다), 건강에도 좋고 감각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특히 라파엘전파 예술가들이 중세풍 복식을 제안했는데, 제인 모리스를 그린 그림에는 자연스러운 여성미와 드레스에 대한 그들의 이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녀는 드레이프된 느슨한 드레스를 입었으며, 이 옷은 활동이 자유롭고 몸을 조이거나 코르셋을 착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영향과 의의

      의상개혁운동은 여성의 복장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되었고, 이는 곧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자립과 직결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움직임은 지속되고 있으며, 현대 패션은 여전히 건강과 기능성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여성복의 발전은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의상 디자인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여성의 신체를 존중하고, 그들의 편안함을 고려한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운동의 본래 목적이었던 여성의 권리와 지위 향상은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의상개혁운동의 교훈

       

      20세기 초의 의상개혁운동은 단순히 패션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이 운동이 없었다면 현대의 패션과 여성복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띠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단지 과거의 일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교훈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