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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궁핍한 시대에 사치스러운 옷감으로 의복을 만들었고, 남성들이 하던 일을 여성들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의복비 지출은 증가했다는 현상은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크리크 크리놀린(Kriegkrinoline)'이란 말은 독일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전쟁 시기의 크리놀린”을 뜻합니다. 이는 19세기 중반, 특히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1871)이나 크림 전쟁(1853-1856) 등 유럽에서의 전쟁 기간 동안 여성복(드레스와 슈트)에 나타난 변화를 반영한 개념을 의미합니다.
당시 여성들은 스커트 버팀대인 후프를 사용하지 않고, 여러 겹의 패티코트만으로 지탱하는 극도로 넓은 스커트를 입었습니다. 이렇듯 풍성한 종 모양의 스커트는 전쟁시기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원단 사용으로 비싸진 스커트의 가격은 조악한 원단의 질과 수수한 장식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습니다.크리놀린(Crinoline)의 기본 개념
크리놀린은 19세기 여성들이 착용한, 종 모양의 커다란 스커트 실루엣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 구조물입니다. 초기에는 말총(horsehair)과 린넨(linen)으로 만들어졌지만, 1856년 이후에는 가벼운 강철 후프(hoop)로 제작되면서 실용성이 증가했습니다. 크리놀린은 당시 패션의 필수 요소였으며, 여성의 신체를 과장되게 강조하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복식은 상당히 비실용적이었고, 특히 전쟁과 같은 사회적 격변기에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크리크 크리놀린(Kriegkrinoline)의 부상
전쟁 시기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로 인해 여성들의 크리놀린 스타일도 조정되었습니다. 크리크 크리놀린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크기의 축소
전쟁으로 인해 철과 같은 주요 자원이 군수품 생산으로 전용되면서, 크리놀린을 구성하는 강철 후프의 사용이 제한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크리놀린의 폭이 줄어들고, 보다 실용적인 실루엣이 등장했습니다.1860년대 말부터 크리놀린 대신 '크리노렛(Crinolette)'과 같은 작은 후프 스커트 또는 '버슬(Bustle, 엉덩이 부분이 부풀려진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2) 실용적인 디자인
전쟁 기간 동안 여성들은 간호사, 노동자, 봉사 활동가로 사회적 역할이 확대되었으며, 움직임이 자유로운 옷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크리놀린은 점차 축소되거나 제거되었고, 실용적인 실루엣이 선호되기 시작했습니다. 허리선을 강조하면서도 활동성을 고려한 디자인이 등장했습니다.
3) 전쟁시기에서의 의미
전쟁 중에는 애국심을 반영한 패션 요소가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일부 여성들은 애국적인 색상(프랑스의 삼색기 색상 등)을 의복에 반영했습니다. 여성들은 전쟁 지원을 위해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사회적 기대에 맞게 격식을 갖춘 복장을 유지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조하는 경향이 다시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파니에 스커트와 배럴 형태가 소개되었고, 루이 15세 시대의 비더마이어 곡선들과 라인들이 유행했습니다. 풍성한 스커트를 보디스와 함께 입었고, 스커트 옆쪽에 페플럼을 덧붙여서 엉덩이 모양을 강조했습니다. 처음으로 데이 드레스의 스커트가 종아리 길이까지 짧아져서 끈으로 묶는 부츠와 함께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로맨틱한 스커트 모양과는 대조적으로 재킷은 군대풍 장식물, 끊으로 묶거나 제복처럼 높은 칼라, 수수한 라벨, 금속 단추 등으로 꾸미고 금속성 색채나 테게트호프(Tegetthooff: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해군 장군) 블루와 같이 장군이나 해군의 이름을 붙인 색채를 사용하였습니다.
오트 쿠튀르 역시 크리크 크리놀린에 초점을 맞췄지만, 디자인은 더 부드럽고 섬세해지고 스커트 길이는 좀 더 길어졌습니다. 이런 풍성한 스커트들은 1920년대의 <유행복식(Robe de style)>에도 남아있습니다. 높은 허리선과 둥근 가슴선, 종아리 길이의 넓은 스커트를 특징으로 하는 오스트리아의 던들 의상이 1916년 당시의 유행에서 부상된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시대의 위기는 새로운 소재만큼이나 패션계에 촉매제 역할을 하지만, 겉으로는 안정되고 조화로운 시대를 원하는 듯한 감상적이고 과거 회귀적인 패션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습니다. 커다란 밀짚모자와 베일, 보디스, 코트셀렛트 형태의 넓은 벨트, 빈터할터 풍의 넓은 스커트는 시대물 영화에서 수도 없이 등장하고, 반면 포크 보닛과 왈츠 가운은 뮤지컬 영화들에서 등장합니다. 레이스, 꽃과 잎들을 섬세하게 프린트한 시폰, 잔물결을 1990년대 할리우드 의상들에서 볼 수 있듯이 엄청난 양의 천이 들어가는 스커트와 어깨를 강조하는 퍼포 소매, 엉덩이 모양을 잡아주는 플라운스, 이브닝 가운의 구름 같은 스커트 자락 등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전쟁과 패션의 관계
크리크 크리놀린의 등장은 전쟁이 패션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전쟁은 단순히 군복이나 남성 의류뿐만 아니라, 여성복에도 실용성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 여성들은 전시 노동에 참여하면서 롱스커트 대신 짧고 실용적인 스커트를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1939-1945): 자원 절약을 위해 천 사용이 줄어들고, 간결한 디자인이 유행했습니다.
이처럼 크리크 크리놀린은 패션이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패션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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