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GHT SIDE

Fashion + Culture + Style

  • 2025. 3. 17.

    by. brightsider

    목차

       

      power dressing

       

      자동차가 기존의 매력을 잃지 않기 위해 정기적으로 변해야 하는 것처럼 (서구 세계에서는) 여성의 몸도 시시각각 변형된다. (베르나르도 루도프스키, 1978)

       

       

      패드를 넣은 지나치게 넓은 어깨에 핀스트라이프 슈트로 된 파워 의상(Power dressing)이 직장 여성에게 한창 인기를 끌고, 영국 하위문화에서 비롯된 '누더기 같고 구멍 난' 룩과 인위적으로 구긴 옷감이 인기를 끌던 그 시기에 또 다른 미의식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17세기 바로크 시대 궁정 축제의 화려함과 신분에 집착하는 프랑스 귀족을 연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푸프, 버슬, 튀튀, 크리놀린 (Pouf, Bustle, Tutu, Crinoline)

       

      이러한 유행은 1982년에 뻣뻣하고 작은 패티코트 튀튀(튈 소재로 된 작은 발레 스커트)의 등장으로 촉발되었습니다. 십대 소녀들은 디스코 테크에 갈 때 미니스커트 형태의 튀튀를 입었는데 밝은 색이나 네온 색의 튈로 된 플라운스가 층층이 겹쳐져서 눈에 잘 띄었습니다. 젊은 여성들은 이러한 페티코트 가장자리를 안으로 모은 벌룬 형태 스커트를 밤의 파티에서 뿐만 아니라 낮 동안의 일상에서도 입었습니다. 종아리 길이의 스타일은 딱딱하고 우아한 1950년대 디올의 의상과 흡사했습니다. ('보그'지에서 다시 한번 선보였던) 칵테일 파티용으로 디자인된 보다 퇴폐적인 버전은 헐리우드의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아마데우스>(1984)를 계기로 더 많이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룩은 장 폴 고티에가 레이스 보디스와 와이어 브라를 노출하여 속옷을 겉옷처럼 디자인해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패티코트란 나일론이나 풀 먹인 면으로 된 넓고 빳빳한 속치마를 말하는데, 종종 레이스 주름이 있거나 가끔은 보디스 뷔스티에가 달려 있었습니다. 1985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미니 크리놀린'이라는 이름의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타이트한 코르셋 형태를 한 이 크리놀린의 계단과 구성은 그녀가 열심히 연구한 전통적인 18세기 크리놀린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장 폴 고티에 의상

       

       

      디자이너들의 구조적 드레스

       

      일본 쿠튀리에르 요지 야마모토의 디자인은 정확히 100년 전 극에 달했던 '퀴 드 파리(cul de Paris)'를 참조한 것입니다. 파리지엔의 엉덩이라는 뜻의 퀴 드 파리는 드레스 주름을 넉넉하게 잡아주는 스타일을 말하는 데, 바로크 시대 말 1690~1700년 경에 부팡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유행한 여성 패션입니다. 이것이 약 1세기 후에는 드레스에 볼륨감을 주기 위해 치마 아래에 입는 롤처럼 생긴 허리 받침 투르뉘르나 버슬로 다시 유행하게 되는데 원래는 폴로네즈 치마의 주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여성 스커트 역사의 다양한 양상들을 인용하고 약간의 아이러니를 동원해 논평하면서 거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헬무트 랑 조차도 미니멀한 블랙 앤 화이트의 짧은 스커트에 트레인이 달린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자신의 배경을 완전히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파스텔 새틴 코트 드레스를 만들면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18세기를 다시 부활시키는데, 바닥에 닿는 예전의 긴 스커트를 몸에 달라붙는 미니로 변형시켜 허벅지까지 오는 부츠와 함께 스타일링하였습니다.

       

      같은 컬렉션에는 벨벳, 브로케이드, 금사 실크로 만든 무릎 길이의 반바지와 저킨 같은 재킷으로 구성된 페이지 보이 슈트도 있었습니다. 잔프랑코 페레는 심플한 블랙 보디슈트에 넓은 골드 펠트로 마치 바로크 그림의 액자처럼 악센트를 주며 가는 허리를 조였습니다. 몇 명의 디자이너는 크리놀린을 뼈대만 남기고 텅 비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지지틀, 즉 구조가 전부 눈에 보이도록 노출시키기도 했습니다.